가구수 | 인 구 현 황 | 면 적 | ||
---|---|---|---|---|
계 | 남 | 여 | ||
2,771 | 5,686 | 2,766 | 2,920 | 4.61 ㎢ |
동쪽으로는 산외면과 내일동, 서쪽으로는 내이동, 남쪽으로는 내일동과 내이동, 북쪽으로는 상동면을 접하고 있으며 국도25호선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교동의 중심부를 가로질러 연결됨에 따라 교통이 발달한 지역으로서 인근 초,중,고의 학교가 있어 교육여건이 어느 지역보다 편리하며 밀양의 관문으로서 밀양시의 수려한 경관이 있는 얼음골, 표충사 등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밀양시의 중심에 위치한 지역임
9개통 38개반 3개 자연마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4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관학기관으로서 임진 왜란때 소실된 것을 선조 35년(1602년)에 중건한 건물로서 향교내에는 문선왕 공자 위패를 모신 대성전외 동무,서무,내삼문,명륜당,동제,서제, 풍화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년 봄, 가을 문선왕 공자를 주향하는 석전 대제를 봉행하고 있음.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15호로 지정된 추천 손 영재(1521∼1588) 선생의 별서로서 밀양강을 바라보며 추화산 중턱에 장송으로 둘러쌓인 뛰어난 자연경관에 입지하고 있으며 1580년대에 창건하여 정자를 오연,당을 모례서당으로 편액하여 서원으로 기능하였으며 임진왜란(1592) 및 화재(1717)로 소실된 것을 1771년 중건하였고 1936년 후손들이 확장 중건하였으나 현재에는 고직사라 부르는 부속건물과 오연정만 남아 있음.
경상남도 기념물 제94호로 지정된 장소로서 삼국시대 초기에 추화산의 8부능선 등고선을 따라 축조된 퇴뫼성으로 그 둘레는 1,430m로서 동,남,북에 문지를 두고 북쪽 계곡진 평지에 우물 2개소,연못,건물등을 배치되었고 성안 서쪽에는 봉수대지와 동쪽에는 박,손장군 부부의 목상을 모신 성황사지가 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날 추화산성 봉수제가 개최되고 있음.
찬바람이 부는 어느 겨울 밤. 자정이 좀 지나 무거운 소금짐을 지고 고개를 넘던 소금장수는 고갯마루에서 잠깐 쉬기 위해 등에 진 소금짐을 내려 놓았다. 등골에 땀이 날 만큼 무거운 짐이었다. 날씨가 쌀쌀하긴 했지만 다음 날 소금을 팔 욕심 으로 밤길을 걸은 탓에 피곤하여 잠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소금장수는 밤중이라도 더 걸어가야 다음날 청도장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여 곧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금장수는 너무 피곤하여 소금짐에 기댄 채 자신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비몽사몽간에 그 장수는 곧 일어나야 한다고 마음을 다져 먹고 있을 때 맞은편 고개 아래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헐레 벌떡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달빛을 받으며 고갯마루를 향해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는 노인을 소금장수는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소금장수 앞에 이르렀을 때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은 닭 우는 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고갯마루에서 밀양쪽을 내려다 보며 길게 숨을 들이키고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그리고는 뭐라고 중얼거리며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소금장수는 "노인장, 왜 그러십니까? 갈길이 아주 바쁘신 모양인데요"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노인은 한숨만 내쉴 뿐 대답이 없었다. 큰 걱정거리라도 있는 듯 했다."왜 그러십니까? 제가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는지요? " 이때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서 "올해에도 또 틀렸군. 오늘이 내 제삿날인데, 만주서 여기 까지 밤 세워 왔지만 금년에도 이 고개까지 오니 닭이 우는구려. 어쩔수 없이 또 돌아가야 되겠구려." 하고는 또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아니 제삿날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요. 생전에 먹고 살기 위해 처자를 데리고 만주땅에 갔었는데 거기서 나는 몇 년 되지도 않아 병이 들어 죽고 말았소. 처자식들은 만리 이역에 나를 묻어 놓고 도로 밀양 땅으로 내려가 버렸지요. 나 혼자 타향 땅에 묻혀 있는데 제사 때마다 이렇게 달려 오지만 이 고개에만 오면 닭이 울어버려 돌아가곤 했지요. 그래서 저승처사에게 하루 먼저 보내 달라고 졸랐지만 저승의 법으로는 제사 당일 출발해야 한다고 하니 어쩔도리가 없소이다. 고갯마루에서 제사를 지내도 내가 음복을 할 수 있을텐데... ... " 노인은 씁스레한 표정을 지으며 입맛만 다시었다. "그럼 노인장의 성은 무엇이며 처자식들은 어디에 계신지요? " 소금장수의 물음에 노인은 대충 이야기하고는 왔던 길을 도로 가버렸다. 찬바람이 휙 몰아치자 소금장수는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 보았다. 그 노인은 온데 간데 없었다. 잠든 사이에 꿈을 꾼 모양이었다. 그러나 꿈이라 해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소금장수는 날이 밝자마자 꿈속에서 일러준 대로 그 집을 찾아가 보았다. 주인을 만난 소금장수는 지난밤 꿈 얘기를 모두 들려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집에서는 간밤에 만주서 돌아가신 부친의 제삿날이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 자식들은 부친의 제삿날이 되면 집안에서 제사를 모시지 않고 제수를 차려 이 고갯마루에서 제사를 모시고 돌아가곤 했다. 그후 사람들이 이 고개를 제사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밀양역 시내버스 터미널에서 시내버스가 15∼20분 간격으로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