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네비게이션
본문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밀양시관련홈페이지
밀양시청
문화관광
밀양시의회
일자리지원센터
통합예약
국가상징
이용안내
사이트맵
로그인
Language
English
Chinese
Japanese
닫기
검색어
통합검색
맑음
맑음
15℃
미세먼지
26㎍/㎥
좋음
초미세먼지
10㎍/㎥
좋음
밀양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주메뉴
전체메뉴
로그인
전체메뉴 닫기
밀양 방문의 해
밀양 방문의 해 소개
홍보 사진 및 영상
홍보대사
프로그램 및 이벤트
프로그램
이벤트
교육관광
인센티브
주요행사
밀양관광
밀양8경
영남루 야경
시례 호박소
표충사 사계
월연정 풍경
위양못 이팝나무
만어사 운해
종남산 진달래
재약산 억새
3대신비
여름에 얼음이 어는 얼음골
사명대사 비석에 흐르는 땀
종소리 나는 만어사의 경석
관광명소
산/강/계곡
사찰/유적지
공원/기타관광지
어린이놀이터
체험견학
영화드라마촬영지
밀양촬영지
오구촬영지
똥개촬영지
청풍명월촬영지
방자전촬영지
이달의 아주 핫한 여행지
이달의 아주 핫한 여행지 확인하기
테마관광
추천코스
1박2일 촬영지 코스
시내권코스
무안코스
삼랑진코스
얼음골코스
표충사코스
일정별코스
당일코스
1박2일코스
2박3일코스
탐방투어
사명대사유적지탐방
전통사찰을찾아서
사적지탐방
전통가옥탐방
석탑별탐방
걷고싶은길
밀양아리나
영남루 수변공원길
추화산성길
금시당길
힐링꽃길
밀양강 둔치
상동 명품 장미꽃길
초동 연가길
밀양연꽃단지
산외면 해바라기
삼문송림 구절초
하남 명품십리길
하남 명례 메밀꽃
내일5통 테마길
별달굽이길
곱돌길
달빛쌈지길
백중놀이길
밀양시티투어
시티투어안내
코스상세보기
향교서원 풍류투어
향교서원스테이 1박2일
살아 숨쉬는 향교서원
신청하기
온택트 밀양여행
VR투어
영상여행
역사 · 문화
밀양아리랑
대한민국 3대 아리랑
밀양아리랑이란?
밀양아리랑 영상
밀양아리랑 음원
밀양아리랑 서체
밀양아리랑 로고
박물관/기념관
시립박물관
밀양독립운동기념관
의열기념공원
미리벌민속박물관
한천박물관
얼음골축음기소리박물관
보현박물관
충혼탑
국가유산
문화유산
무형유산
자연유산
문화시설
밀양아리랑아트센터
청소년수련관
밀양아리나
밀양영화고등학교
축제 · 체험
행사 · 공연 일정
일정 확인하기
축제/민속놀이
밀양아리랑대축제
밀양아리랑마라톤대회
지역별 축제
민속놀이
추화산성봉수제
체험코스
부북면 퇴로고가체험
황토체험관
농촌체험휴양마을
농촌교육농장
표충사템플스테이
미리미동국
밀양시국궁장
새미음식문화 예술촌
한천체험관
밀양치즈스토리
밀양강 오리배
체육시설
밀양시시설관리공단
음식 · 숙박 · 쇼핑
음식
전체
모범음식점
위생등급지정업소
착한음식점
밀양돼지국밥
숙박
밀양 도재래 자연휴양림
호텔
모텔/여관
민박
기타
야영장
자동차 야영장
일반 야영장
쇼핑
특산물
전통시장&대형마트
밀양팜(농특산물쇼핑몰)
관광안내
커뮤니티
공지사항
밀양사진 이벤트
공모전 수상작
관광안내책자신청
관광정보
종합관광안내소
관광가이드북
등산안내도
Yes! 펫존
교통정보
공중화장실현황
내가짜는여행코스
여행코스 만들기
#감성추천밀양여행
문화관광해설
문화관광해설사소개
문화관광해설신청
밀양시청
이용안내
관광검색
관광해설
밀양시 인스타
밀양시 블로그
밀양시 유튜브
TOP
전체메뉴
메뉴
VR Tour Service
밀양여행VR
역사·문화
하위메뉴펼치기
밀양아리랑
대한민국 3대 아리랑
밀양아리랑이란?
밀양아리랑 영상
밀양아리랑 음원
밀양아리랑 서체
밀양아리랑 로고
박물관·기념관
시립박물관
밀양독립운동기념관
의열기념공원
미리벌민속박물관
한천박물관
얼음골축음기소리박물관
보현박물관
충혼탑
국가유산
문화유산
국보
보물
국가민속유산
사적
도 유형문화유산
도 기념물
도 문화유산자료
국가등록유산
무형유산
국가무형유산
도 무형유산
자연유산
천연기념물
명승
문화시설
밀양아리랑아트센터
청소년수련관
밀양아리나
밀양영화고등학교
Home
역사·문화
밀양관광
테마관광
역사·문화
축제 · 체험
음식.숙박.쇼핑
관광안내
이용안내
밀양 VR 투어
밀양 방문의 해
국가유산
밀양아리랑
박물관.기념관
국가유산
문화시설
문화유산
문화유산
무형유산
자연유산
PRINT
링크
SHARE
밀양시 페이스북
밀양시 트위터
밀양시 블로그
밀양시 인스타그램
밀양시 유튜브
밀양시 카카오스토리
도 문화유산자료
총
59건
의 문화유산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
4
/ 6 Page)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검색
31
밀양 원서리 손씨고가(密陽 院西里 孫氏古家)
분류
문화유산
위치(주소)
밀양시 산내면 원서2길 46
문의처
손태흥
소개
이 집은 일제시기인 1930년경에 건축한 근대한옥으로, 안채와 사랑채를 비롯 고방채, 헛간채,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에 붙은 중문간 상부의 종도리 받침장여 밑면에 “丙寅五月初四日巳時立柱初五日上樑(1926년)”이란 묵서했으며, 대문채에도 癸亥○○竪柱上樑(1923년)이라 묵서가 있는 것으로 보아 대문채는 1923년, 사랑채는 1926년에 각각 건축한 것을 알 수 있다. 안채는 묵서명을 확인할 수 없으나 대문채와 거의 동시기에 건축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집이 위치한 마을은 남쪽으로 산이 겹겹이 둘러싸고 前方인 북쪽으로 朝山을 두고 개방된 형국이다. 이러한 마을 形局에 따라 주택의 안채는 朝山을 향해 北東向으로 건축되어 있으며, 안채와 직교하여 배치된 사랑채는 南東向하고 있다. 이 집의 건물 배치에는 근대기 한옥의 분산형 배치형식이 잘 나타나 있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사랑마당이 나오고, 사랑마당에 면해 사랑채와 중문간채가 남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문채 우측에 붙어 헛간채가 모로 배치되어 있다. 중문간채에 있는 중문간을 통해 안마당과 안채, 고방채로 출입한다. 안채는 정면 6.5칸, 측면 2.5칸의 팔작집으로, 좌우 측면의 柱列 구성이 동일하지 않으나 전후퇴가 발달한 형식이다. 평면은 우측부터 정지․안방․안마루․건너방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정지 뒤쪽에는 정지방이 있고, 안방 뒤쪽에는 길게 반침이 시설되어 생활용품을 수장할 수 있게 했다. 부엌 위에는 안방에서 사용하는 다락이 있다. 대청 배면에는 툇마루가 놓여있다. 평면구성에서 특징적인 것은 부엌 배면에 정지방을 둔 점과 전후퇴의 발달, 반침을 비롯한 다양한 수장시설 등을 시설했다는 점이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집이다. 평면은 우측부터 사랑마루 ․ 사랑방 ․ 자녀방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으로 반칸 돌출한 자녀방 뒤쪽에 사랑부엌이 있다. 사랑방과 사랑마루 前面으로 길게 툇마루가 시설되어 있으며, 사랑부엌 상부에는 사랑에서 사용하는 다락이 있다. 사랑방과 사랑마루의 우측과 배면에 좁고 긴 쪽마루가 놓여 앞뒤면의 출입동선을 연결해주고 있다. 사랑채 평면구성에서 특징적인 것은 자녀방 배면의 폐쇄적인 사랑부엌의 존재 및 前退와 배면, 우측면의 쪽마루는 근대기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사랑채 정면 좌측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중문간채가 연접되어 있으며, 대문채는 자연석 외벌대 기단 위에 건축한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의 팔작집으로, 어칸에 대문을 내고 그 우측에 외양간, 좌측에 온돌방을 꾸몄다. 온돌방 앞에는 쪽마루를 꾸며 놓았다.
32
밀양 검암리 곡강정(密陽 儉巖里 曲江亭)
분류
문화유산
위치(주소)
밀양시 초동면 곡강길 9-15
문의처
벽진이씨여은공종중
소개
곡강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의 홑처마 소로 수장집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어칸에 단칸의 작은 온돌방을 두고 그 좌우와 정면에 마루를 꾸민 형태이다. 평면형식은 호남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온돌방을 평면 중앙에 두고 그 주위에 마루를 시설한 형식과 유사하나 온돌방 배면 좌우가 마루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이 다른 점이다. 온돌방 좌우 마루 배면에만 쪽마루를 시설했기 때문이다. 온돌방과 좌우 마루의 경계부에는 삼분합 들문을 시설하여 필요시 마루와 온돌방을 공간적으로 통합할 수 있게 의도했다. 상부가구는 5량가로, 측면 중앙기둥에서 대량 위로 충량을 걸쳐대고 그 위에 외기를 짜고 우물반자를 시설했으며 연목은 마족연(馬足椽) 수법으로 결구되어 있다. 주두 밑에는 첨차형 부재를 끼워 넣고 그 양끝에 소로를 놓아 처마도리 받침장여를 지지하는 평이두(平二斗)의 수법을 사용했다. 이밖에도 정면 창방과 장여 사이에는 소로를 끼워 수장했다. 기둥에는 곡재와 직선재를 혼용하였으며, 만곡율이 큰 곡재(曲材)를 기둥으로 사용하기 위해 곡면부 바깥쪽에 1치 정도의 홈을 내고 쇄기를 박아 직선재에 가깝게 교정 후 사용한 것도 특징이다. 현 곡강정은 1806년 중수 당시 형식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는 조선후기의 강변 정자건축으로서 특징을 잘 보여준다.
33
밀양 운주암 칠성탱(密陽 雲住庵 七星幀)
분류
문화유산
위치(주소)
밀양시 청도면 화악산길 249-241
문의처
운주암
소개
조설말기에 그린 칠성탱(七星幀)으로 화악산(華嶽山) 운주암에 보관되어 있다. 이 칠성탱(七星幀)은 화면 중심부에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에 금륜(金輪)을 지닌 채 청연화좌(靑蓮華坐) 위에 결가부좌한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가장 크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 좌우에는 협시보살인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을 주존의 1/2크기로 배치하고 있다. 주존 바로 아래쪽이자 화면의 하단 중앙에는 특이하게 연주문(聯珠文)이 있는 청색의 원권(圓圈)을 형성한 후 주황색 바탕위에 천도(天桃) 가지를 쥐고 있는 서왕모(西王母)와 석류(石榴)를 든 천동(天童)을 표현하고 있다. 좌우에는 원유관(遠遊冠)을 쓴 채 도복을 입고 선 칠원성군(七元星君)이 홀(笏)을 쥐고 있거나 경책을 펼쳐 보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둘째 열에는 주존을 향해 합장한 모습의 일곱 여래(七如來)가 묘사되어 있는데, 일광보살 좌측에는 좌변여래(左邊如來) 삼위(三位)와 태상노군(太上老君)을, 월광보살 우측에는 우변여래(右邊如來) 4위(四位)를 배치한 것 임을 묵서로 밝히고 있다. 셋째열의 향우측에는 삼태육위성(三台六位星)을 향좌측에는 성군(星君) 2위와 월천자성(月天子星), 일천자성(日天子星), 존제(尊帝) 2위를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인 설채(設彩)도 적색과 녹색을 위주로 하여 조선 말기에 등장하는 밝은 청색을 요소 요소 가미하고 있는 19세기 조선말기 탱화의 색채를 보여준다. 복장물(腹藏物)중 감색물을 들인 한지 원문(願文)이 발견되었는데 원문에는 연화질(緣化秩)과 함께 1896년(병신) 8월일에 조성 봉안하였음을 적어두고 있다.
34
밀양 운주암 신중탱(密陽 雲住庵 神衆幀)
분류
문화유산
위치(주소)
밀양시 청도면 화악산길 249-241
문의처
운주암
소개
운주암에 보관된 조선말기에 제작한 신중탱화이다. 이 신중탱(神衆幀)은 화면을 크게 상단과 하단으로 구분한 후 조선후기에 채용하고 있는 좌우 대칭적 구도로 상단에는 제석천과 범천을 위시한 홀(笏)을 지닌 일(日). 월(月) 신중(神衆)과 보개(寶蓋)를 지닌 천동(天童) 및 보당을 지닌 천녀(天女)를, 하단에는 동진보살을 위시한 용왕과 복덕대왕 등의 신중(神衆) 네 위를 배치하고 있다. 제석천과 범천은 정면관(正面冠)에 큼직한 보관(寶冠)과 두광(頭光)을 지닌 채 합장하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화면의 하단 동진보살의 얼굴 묘사는 제석천, 범천과 동일하며 투구는 화려하게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설채(設彩)는 적색과 녹색을 위주로 하여 삼청색을 군데군데 가미하고 있는데, 바탕은 갈색으로 채색하고 있다. 이 신중탱은 화면의 하단 중앙 가장자리 밖에 화기란(畵記欄)을 마련한 후 적색 바탕에 화기를 묵서하고 있는데 화기에 의하면 광서(光緖) 경인년(庚寅年, 1890년) 4월 일에 표충사(表忠寺)에서 제작하여 현당에 봉안하였다고 하며 이 탱화를 제작한 금어(金魚)는 봉구(奉口)와 묘영(妙英)이었다고 한다. 탱화의 배면에는 장지로 배접한 후 주사(朱沙)로 다라니를 적어두고 있는데 그 중앙 부분에는 가로 약 9.2cm, 세로 약10.4cm 크기의 복장부(腹藏部)를 갖추고 있는데, 19세기말 신중탱화의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35
밀양 원서리 혜남정(密陽 院西里 惠南亭)
분류
문화유산
위치(주소)
밀양시 산내면 원서2길 39
문의처
일직손씨통정공파종중
소개
유남(維南) 손창헌(孫昌憲)이 1931년에 지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유남 손창헌(維南 孫昌憲: 1866~1931)이 1931년에 건축하면서 실혜산(實惠山) 남쪽에 있는 집이라고 혜남정(惠南亭)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그 후 그의 차남인 기정(基正)이 1942년에 증축하였다. 혜남정은 밀양과 울산을 잇는 24번 국도의 명소인 얼음골 계곡 입구에 있는 원당마을의 중앙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북으로는 경북 청도군의 경계인 가지산과 운문산이 있으며, 남으로는 표충사의 주산인 제약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혜남정이 있는 원당마을은 제약산 쪽에 기대어 북향하고 있다. 정자는 마을의 윗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은 정자의 북서쪽으로 형성되어 있고, 동남쪽으로는 숲과 적지 않은 연못을 끼고 있어 수려한 경관이 보존되어 있다. 혜남정의 전체 영역은 본 건물인 정자 이외에도 정자의 정면에 중문으로 솟을삼문이 있으며, 그 밖의 바깥마당에 고직사, 창고와 바깥 대문이 위치한다. 혜남정의 정면은 “ㄱ”자형으로 전면의 돌출부는 누마루로서 2×2칸의 구성으로 되어 있으며 중심부는 5.5×1.5칸으로 정자의 규모로는 매우 큰 규모에 속한다. 정자 중앙부는 가운데 2칸의 마루를 중심으로 온돌방이 양측에 있으며, 전면에 모두 퇴를 두었고, 누마루가 있는 쪽의 1칸 온돌방 측면으로 퇴를 만들었다. 반대쪽에 2칸의 온돌방과 누마루 주변은 모구 계자각 난간을 둘렀다. 솟을대문 옆은 화장실을 두었는데, 실내의 바닥을 목재로 꾸민 개량식으로 구성했다. 고직사는 4×1칸 규모로 영남형의 전형적인 민가로, 지붕을 팔작기와집으로 마감했다. 부속창고도 팔작와가로 지어 부농(富農)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혜남정은 건축시기가 일제강점기 중기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의 목조건축의 기법이 잘 계승된 건축이다. 그러나 공간의 구성이나 기능을 다양하게 구성하려고 한 근대적 의도가 잘 나타나 있고, 목재의 사용에 의한 가구의 구성은 전통적인 수법이 사용되면서도 근대적인 기술을 반영하여 치목을 하거나 재단된 화강석을 사용한 것 등에서 근대기술의 도입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몰탈 위 물씻기 한 기단의 바닥 등에 신 건축기법이 적용되어 전통과 근대의 동시적용 현장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36
표충사 대원암 칠성탱(表忠寺 大願庵 七星幀)
분류
문화유산
위치(주소)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문의처
표충사
소개
표충사 대원암 삼성각에 봉안된 조선말기에 그린 칠성탱이다. 이 칠성탱은 화면을 상하 이등분하여 상단 중앙에는 주존인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조금 크게 배치하였고, 그 좌우에는 일광, 월광보살 및 칠여래 중 여섯 여래가 주존을 향해 몸을 틀어 합장하고 있는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다. 화면 상단 후면에는 일곱여래 중 1위, 칠원성군 1위, 성군 2위가 합장하고 있거나 홀(笏)을 지낸채 시립(侍立)하고 있다. 화면 하단의 중앙에는 역시 권속들 보다 조금 크게 묘사된 자미대제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홀을 들어 예를 표하는 성군 2위와 6위의 칠성원군이 좌우 대칭적으로 앉아있는 구도로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조선후기 탱화 제작시 밑그림으로 반을 접어 초본을 완성했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주존인 치성광여래는 두광과 신광을 지닌 채 조금 크게 묘사되어 있는데 눈, 코, 입 등을 조밀하게 묘사한 원만한 상호와 당당한 신체, 그리고 가슴까지 들어 올린 오른손에는 금박으로 입힌 금륜(金輪)을 쥐고 있으며, 신광 내부에는 4색 광선이 표현되어져 있다. 또한 주존과 유사한 얼굴 세부표현을 보여주고 있는 일곱 여래는 주존과 동일하게 머리 부분을 먹으로 검게 칠한 후 녹색으로 윤곽선을 긋고 있는데, 그 윤곽선이 특이하게 구획되어 있기도 하다. 불화의 하단 중앙에는 자미대제가 경책을 펼쳐 놓고 있고, 그 좌우에는 원유관(遠遊冠)을 쓴 칠성원군들이 도복(道服)을 입고 앉아 수염을 쓰다듬거나 홀을 잡고 있거나 합장을 한 채 중앙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다. 자미대제의 좌측에는 칠원성군 중 빈낭(貧狼), 녹존(祿存), 렴정(廉貞)의 1.3.5 원성군을, 우측에는 거문(去文), 문곡(文曲), 무곡(武曲)의 2.4.6 원성군을, 그리고 화면 상단 향좌측 모서리에는 파군이라는 제7의 원성군의 명호를 각각 전서체로 쓴 명패가 원유관 위에 놓여져 있다. 치성광여래 후면에는 공간감을 자아내는 서운(瑞雲)이 피어오르고 있고, 그 속에서 3/4정도로 내민 해와 달이 좌우 대칭적으로 표현되어져 있으며, 여백에는 청색으로 칠해져 있다. 주존과 일곱 여래는 칠원성군과는 달리 바림을 대체로 절재한 채 면색을 칠한 후 윤곽선을 가는 먹선으로 처리하고 있으나, 그 굵기와 필력이 일정하지 않다. 설채는 적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하여 청색을 부분 부분 사용하고 있으며, 지물인 금륜(金輪)이라든가 홀(笏), 그리고 원유관과 요대 등에 금박을 입히고 있다. 그리고 법의 및 도복의 적색 바탕위에는 화문(花紋), “옴”의 범자문(梵字文), 아자문(亞字文)의 의문(衣文)을 모두 그려 넣고 있으며, 등장인물 모두 녹색 원형 두관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화면 아래쪽 좌우에는 적색의 화기란(畵記欄)을 마련한 후 화기를 묵서하고 있다. 이 화기에 의하면 이 칠성탱은 광무 4년(1900년) 동래 금정산 미륵암에서 화사 경수(敬秀)가 그린 후 표충사 대원암으로 옮겨 봉안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탱화의 배면(背面)에는 화면 위의 테두리에서 33cm 아래쪽 중앙에 가로.세로 약22cm 정방형 크기의 복장부(腹藏部)가 있으며, 그곳과 동서남북 사방에는 점안 봉인(點眼 封印)한 후 범자진언(梵字眞言)들이 주서(朱書)되어 있고, 채색 또한 안정된 작품이다.
37
표충사 대원암 조왕탱(表忠寺 大願庵 竈王幀)
분류
문화유산
위치(주소)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문의처
표충사
소개
표충사 대원암에 소장되어 있는 20세기초에 그린 조왕탱이다. 이 불화(佛畵)는 화면 중앙에 정면관 형식의 조왕(竈王)이 단독으로 의자 위에 앉아 양발을 약간 벌린 채 족좌대 위에 두고 있는 전신교의좌상의 구도를 지니고 있는 탱화이다. 즉, 적색 단령을 입고 사모를 쓴채 왼팔은 의자 팔걸이에 걸치고 왼손에는 파초를, 오른손에는 부채를 들고 있으며, 인수의 술 2개가 족 좌대 앞으로 드러나 있기도 하다. 화면 상단 좌우 가장자리에 세로로 구획된 적색 바탕에 묵서(墨書)로 적혀있는 영찬란(影讚欄)이 있으며, 다시 그 안쪽 좌우 화면에 수식 띠를 직접 그려놓고 있다. 화면 하단 가장자리에도 역시 적색 바탕에 묵서되어있는 화기란(畵記欄)을 마련하고 있다. 이 불화는 세필을 사용하여 수염을 긋거나 단령 윤곽선과 의습 처리에 철선을 보여주고 있으나 필선이 고르지 못하고 필력 또한 앞 시대의 탱화보다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설채법에서는 적색을 주조색으로 하여 밝고 화사한 청록색 안료를 수식 띠와 파초, 폐슬 등의 채색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청록색에 백색이 가미된 백록색을 아주 묽게 하여 이 탱화의 여백 대부분에 칠해져 있다. 조왕의 육신면에는 육색 외에는 바림질이 없이 옅은 붉은색으로 윤곽선을 긋고 있으며, 의습 부분에는 담묵으로 윤곽선을 그은 후 다시 짙은 적색으로 선을 그어 음영의 효과를 주고 있다. 단령 가장자리 띠 장식에는 단순히 농묵(濃墨)으로만 채색되어 있고 폐슬 상단 가장자리 띠 장식에는 국화문 같은 반절의 초화문이 포치되어 있다. 의자 등받이 쪽에는 갈색 바탕에 먹선 문양으로 내부를 채우고 있으나 의자 아래쪽과 족좌대에는 먹으로 바림질하여 무늬목을 나타내고 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초상화나 영탱 등에 흔히 나타나는 전신 교의상에 단독으로 그려진 이 조왕탱은 화기에서 광무 7년(1903년) 내원암(內院庵)에서 조성하여 대원암(大願庵)으로 옮겨 봉안한 탱화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배면의 중앙부에는 복장을 한 흔적과 함께 불교의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인 “옴마니반메흠(ॐ मणि पद्मे हूँ, )”을 주서해 놓고 있으나 매우 검게 그을려 있다. 표충사 대원암 조왕탱은 화기에서 밝히고 있듯이 대한제국시대인 광무 7년(1903)에 표충사 내원암에서 조성하여 현재의 대원암으로 옮겨 봉안한 조성 및 봉안 내력을 간직한 채 현 위치를 잘 지키고 있는 탱화이자 조왕을 단독으로 묘사한 조왕탱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38
표충사 석조보살좌상(表忠寺 石造菩薩坐像)
분류
문화유산
위치(주소)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문의처
표충사
소개
표충사 석조보살좌상은 조선시대 조성한 석조불상이다. 불상은 허리를 세우고 어깨를 앞으로 약간 숙인 자세를 취했으며, 좁은 어깨에 비해 다리 폭이 넓다.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오른손은 손가락이 아래를 향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하여 직선으로 뻗어 조각기술의 한계를 드러냄은 물론 상(像)에 비해 손이 지나치게 크게 조각되어 있어 서툰 조형감이 드러난다. 머리에는 상의 크기에 비해 매우 높은 원통형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보관 아래 머리에는 정면에서부터 귀 옆 측면까지 가닥을 나누어 빗으로 빗어 내린듯 한 머리카락을 새겼다. 귀의 앞뒤로 내려오는 두 가닥의 머리카락은 어깨에서 하나의 고리를 만들고 다시 세 가닥으로 나누어 흘러내리고, 정수리 가운데 작은 보계(寶髻)는 아래를 묶고 위쪽 가운데를 살짝 갈라놓았다. 방형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큰 듯한데, 길게 그은 눈, 얼굴의 측면으로 이어지는 눈썹과 짤막하면서 뭉툭한 코, 가늘게 보이는 입술 양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목에는 다소 거친 듯한 선각의 삼도선이 있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에 편삼과 그 위에 대의를 오른쪽 어깨에 살짝 걸쳐 내리는 변형통견식(變形通絹式)으로 착의하였으며, 오른쪽 어깨로부터 내려온 편삼은 길게 내려와 배 앞에서 밀착되게 표현되었다. 가슴아래 승각기는 수평으로 입었으며, 가부좌한 양다리를 덮은 군의는 다른 법의의 형태에 비해 유연하게 옷주름이 표현되었는데, 발목에서 펼쳐지듯 아래로 내려 3개의 주름으로 나누어 양측으로 처리하였으며, 그 끝단은 물결모양을 이룬다. 이 석조보살좌상은 조선후기 불교 조각의 보편적인 특성을 따르면서도 얼굴 등에 그 개성이 드러난다. 다소 부자유스러운 조형성은 재료에서 오는 기술적, 시대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은 물론 세부적으로 옷 주름이 더욱 딱딱하고 형식화되는 18세기 전반 이후에 제작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18세기는 17세기의 전통을 계승하고 19세기와 근대를 잇는 시대로서 중요하며 이와 같은 불상을 통해 시대적인 변화와 양식적인 변화의 추이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39
밀양 교동 밀양손씨 고가(密陽 校洞 密陽孫氏 古家)
분류
문화유산
위치(주소)
밀양시 밀양향교3길 7(교동)
문의처
밀양손씨교동파종중
소개
밀양시 교동에 있는 밀양손씨(密陽孫氏)들의 고택(古宅) 가운데 “만석군(萬石君)의 집”으로 불리는 99칸 규모의 대저택이다. 정침은 숙종 연간(1659~1674)에 유학자 인묵재 손성증(認黙齋 孫聖曾)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큰 사랑채는 손영돈(孫永暾)이 20세기초 적벽돌과 춘양목을 써서 누마루형 응접실을 꾸민 특색 있는 건물이다. 1935년 불이 나 정침과 사랑채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에 탔으며 여러 해를 두고 지금과 같이 재건하였다.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사랑채와 중사랑채는 일제시기에 지은 것이다. 조선후기 이후 노후와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보수하였고 없어진 건물도 있다. 대지가 1,000평 이상이고 건물배치도 마당을 중심으로 안채, 사랑채, 중사랑채 등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건물의 배치 형식은 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등 남녀 생활공간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 동편에 “ㄱ”자로 자리 잡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왼편에 누마루 부설된 큰 사랑채가 있고, 행랑마당에서 중문을 통하여 곧장 들어가면 중사랑채가 별도의 공간을 이루고 있다. 넓은 사랑마당을 지나 안채로 들어서는 또 하나의 중문을 거치면 넓은 안마당 북쪽에 정면 7칸의 정침(正寢)이 자리 잡고 있다. 안채를 중심으로 그 전면과 측면에는 창고, 행랑방, 찬간 등을 시설한 별채 건물이 “ㅁ”자로 배치되어 있으며 안채 의 뒤편 북동쪽에 가묘(家廟)를 건축했다. 큰사랑채 뒤켵과 중사랑채 앞뜰에는 각각 정원을 꾸며 정서공간으로 두었으며, 안채의 뒤 부엌과 가까운 곳에 장독대를 만들어 놓았다. 이 집 후방에는 작은 구릉을 사이에 두고, 밀양향교(密陽鄕校)가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 전방으로 아북산(衙北山)을 바라보고 있는 남향(南向)집으로 옛부터 장자(長者)의 명당(明堂)으로 일컬어 오고 있다.
40
밀양 삼랑진 후조창유지 비석군(密陽 三浪津 後曹倉遺址 碑石群)
분류
문화유산
위치(주소)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 612
문의처
밀양시
소개
지방에서 조곡(租穀)과 공물(貢物) 등을 수로(水路)를 통하여 서울로 운송하던 것을 조운(漕運)이라 한다. 밀양 삼랑진 후조창 유지는 신라시대부터 있었고, 조선조에 와서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 조운을 통하여 서울에 수송될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가 곧 조창(漕倉)이지만 이러한 업무 외에도 인근 주현(州縣)의 조세(租稅)를 징수하는 업무가 있었다. 밀양의 납세조창(納稅漕倉)은 주로 석두창(石頭倉)에 해당되는데, 석두창에서는 경상좌도(慶尙左道) 주현(州縣)의 조세(租稅)를 징수하여 1천석(石)을 실을 수 있는 6척의 초마선(哨馬船)을 이용해서 해로(海路)를 통해 매년 2월에서 5월까지 4개월 동안 수송하였다. 영조 42년(1766)에 부사 김인대(府使 金仁大)가 삼랑진에 후조창인 삼랑창(三浪倉)을 증설하여 조선(漕船) 15척으로 밀양, 양산(梁算), 현풍(玄風), 창녕(昌寧), 영산(靈山), 울산(蔚山), 동래(東萊) 등 인근 7개 군현의 조세를 밀양부사 책임 하에 징수하여 서울로 수송, 영납(領納)하는 것은 제포만호(齊浦萬戶: 昌原만호를 말함)가 담당하였다. 삼랑창은 낙동강 연안 7읍의 조세를 조창에 수납하여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에 보내는 조곡(租穀)을 별도로 보관하는 통창이였다. 삼랑진읍 삼랑리 하부부락 일대가 후조창의 유지(遺址)이며, 통창골은 통창(統倉)의 소재지였다. 1945년 광복 직후까지도 차소(差所)와 창고 등 건물 일부가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철거되어 민가가 들어섰다. 현재 “조창산등이”, “조창나루터”, “지점거리”, “선청(船廳)”, “통창골”과 같은 지명이 남아 있고, 부락 뒷편 고개마루에는 조창(漕倉)에 관계되었던 부사(府使), 관찰사(觀察使) 등 역대 관원들의 유애(遺愛), 선정(善政), 불망비(不忘碑)등 8좌가 상존해 있으나 보호각은 없어지고 현재는 비(碑)만 남아있다. 1.부사김후인대유애비(府使金侯仁大遺愛碑) 삼랑진 후조창 창건 당시 밀양부사로 있으면서 후조창 조성을 위해 애쓴 김인대를 기리기 위해 영조 42년(1776년)에 주민들이 건립한 비이다.(비신:49×23×131cm:화강석) 2.부사홍후이간영세불망비(府使洪侯履肝永世不忘碑) 손조 12년(壬申:1812년) 부사 홍이간이 재임중 봉름(俸廩)을 출연하여 뱃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었던 것을 기리기 위하여 후조창선주(後漕倉船主)들이 세운 비석이다.(비신:41×10×120cm:화강석) 3.관찰사조상국인영조운정영세불망비(觀察使趙想國寅永漕運正永世不忘碑) 헌종 9년(道光23년:1843) 관찰사 조인영을 기리기 위해 선청(船廳)에서 건립한 비이다. 청송 시문에 의 하면 재임중에 조인영은 후조창 운영과 관련된 여러 폐단을 없애기 위한 규정을 만들어 반포하여 폐단 이 없어지고, 조선(漕船)도 규정대로 만들어져 세곡을 싣는데도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비신:37×3.5×135 cm :철비) 4.차사원겸도호부사조공운표영세불망비(差使員兼都護府使趙空雲杓永世不忘碑) 헌종 5년(1839년) 월름(月廩)의 일부를 출연하여 주민의 어려움을 보살펴준 밀양부사 조운표를 기리기 위해 선청(船廳)에서 세웠다.(비신:35×3.5×119cm:철비) 5.부사이후정재선정비(府使李侯定在善政碑) 철종 8년(1857년) 밀양부사 이정재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삼랑리 주민들이 세운 비이다.(비신:35×3.5× 11cm:철비) 6.부사이후철연영세불망비(.府使李侯澈淵永世不忘碑) 고종 9년(동치11, 1872) 밀양부사 이철연을 기리기 위해 삼랑리 주민들이 세운 비이다. 청송시문에 의 하면 그는 염세(鹽稅)의 폐단을 감영에 보고하여 주민들의 요구에 부응케 하였고, 마을의 집들이 연소 된데 대하여 관아에서 비용의 일부를 출연하여 집들이 새로 들어서게 해 주었다고 한다.(비신:42×15× 114cm: 화강석) 7.부사이후철연영세불망비(府使李侯澈淵永世不忘碑) 고종 9년(동치 11, 1872년) 월름(月廩)을 출연하여 조창관련 잡비와 관련된 폐단을 경감시켜 준 밀양부사 이철연을 기리기 위해 선주가 세운 비이다(비신:48×16×116cm:화강석) 8.순찰김공세호영세불망비(巡察金公世好永世不忘碑) 고종 9년(1872년)관찰사 김세호를 기리기 위해 삼랑리 주민들이 세운 비(碑) 인데, 비문에 의하면, 50여 년전 김세호의 조부가 밀양부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배풀었는데, 이후 김세호가 관찰사로 부임해 와서 다시 석두창(石頭倉:마산창의 옛명칭)과 관련하여 1석당 운반 추가세 2전을 복구하는 등 삼랑진에 은덕 을 베풀었다고 적었다.(비신:44×13×88cm:화강석)
1
2
3
4
5
6
첫페이지
이전10페이지
4
5
6
다음10페이지
끝
만족도조사
현재 열람하신 페이지를 평가해 주세요.
평가:
매우 만족
(5점)
만족
(4점)
보통
(3점)
불만족
(2점)
매우 불만족
(1점)
의견:
등록
담당자 :
문화예술과
전화 :
055-359-5641
이전배너보기
다음배너보기
배너일시정지
밀양시청
문화체육관광부
경남관광 길잡이
한국도로공사
물사랑 홈페이지
대한민국 구석구석